사촌들의 현재와 미래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우리는 한 핏줄, 멀어져도 지워지지 않은 혈연.

화전풍양趙사촌회

사촌의 글

둘째 작은아버지에 대한 나의 기억

사촌들 2025. 2. 13. 09:08

 내게 둘째 작은아버지 南자 喆?자는 엄밀히 말하면 첫째 작은아버지다. 6형제 아버지들 중에서 제일 첫 번째의 작은아버지이며 그 위로 나의 부친 南자 淳자가 6형제의 맏형이기 때문이다. 南喆 작은아버지는 곧 孝衍사촌의 부친이시다. 어렸을 적 내 눈에는 기골이 장대하고 이목구비가 크고 얼굴이 근엄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할머니(작은아버지의 어머니)의 친정 동생(이름 모름, 작은아버지의 외삼촌)이 한 해 한 번 정도 누나(할머니)를 찾아오곤 했는데 구렛나루와 턱수염이 멋진 분이었다. 남철 작은아버지가 그분의 모습을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현재의 孝衍의 집 말고 한서로 도로변에 살 때, 어린 시절 孝衍사촌을 따라 화전천 개울 건너 가면 하룻밤 자고 올 정도로 孝衍사촌과 나는 동갑내기 난형난제(難兄難弟) 사이였다.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 효연 그리고 아주 어린 동생 정숙(동해시 경숙)이었을 것이다. 안방에서 모두 함께 자고 이튿날 아침까지 얻어 먹고 놀던 기억이 아련하다. 

 그런 작은아버지가 내게 특별해진 건 내가 장성해서 결혼할 때였다. 피치못할 사정으로부산에서 부산 처가의 주도로  부산 처녀(지금의 아내)와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그 때는 경부선 완행열차가 거의 10시간 넘게 부산에 도착하는 거리였다. 강원도 식구들 아무도 참석할 수 없는 처지였는데 그 때 나의 부친과 남철 작은아버지 두 분만 공식적으로 참석하셨다. 화전리에서 양덕원까지 걸어서 버스를 타면 서울까지 와서 기차를 타고 덜컹 덜커덩...... 그야말로 멀고 먼 길을 와주셨던 것이다. 나중에 소식을 들은 승연, 흥연 사촌과 매형(정호섭)이 찾아와 함께 결혼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 먼 길에 피로연 음식 하나 여비조차 챙겨드리지 못한 송구함이 지금도 생각하면 후회 곱씹는 현재진행형이다. 

 그 때의 미안함과 고마움이 孝衍 사촌에게까지 이어져 孝衍 사촌은 언제나 내게 갑장(甲長)이상의 각별한 사촌으로 여겨지고 있다.   성연

 

 

1981년12월 부산역 근처 새마당예식장 결혼식 당시의 신랑측 하객들 왼쪽8명 ~^^*

'사촌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셋째 작은아버지에 대한 나의 기억  (1) 2025.01.30
눈이 오네 It's snowing!  (0) 2025.01.28
고향에 가려면  (0) 2025.01.26
푸른 뱀 a blue snake  (0) 2025.01.24
넷째 작은아버지에 대한 나의 기억  (0) 2025.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