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기억 하나쯤 절절해야 한다. 마음에 저장된 뜨거운 파일 하나 없이 고향을 찾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가슴에 사무치는 원한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고향은 따뜻한 가슴으로 맞이하거나 손사래라도 칠 것이다. 이젠 무조건 손잡아주는 고향이 아니다. 하다 못해 '고향사랑기부제' 하나라도 실행했어야 한다
고향의 돌멩이 하나, 나무 한 그루, 고향집 처마 밑의 아슴프레한 그늘 한자락 가슴 속에 남아 있어야 고향을 찾는 면이 선다. 논두렁 따라 흐르는 도랑물 소리 기억한다면 더 좋은 경우다. 텃밭의 고추나무나 옥수수, 콩나무 우거진 기억이 있다면 더더욱 좋은 구실이다. 만약 어느 한 사람 오랜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정(情)이 있다면 그 보다 좋은 경우는 없을 듯하다.
고향의 사물들이 애틋하기는 하지만 밉거나 곱거나 가슴에 닿는 사람이 있어야 고향을 찾는 자격이 한층 살갑게 갖춰진다. 사람이 전부가 아니겠지만, 적어도 품고 있으면 있을 수록 가슴이 훈훈해지고, 눈시울이 젖어드는 그 놈, 그 년, 아니면 그 새끼가 있어야 고향인 것이다.
설이 다가온다. 단군기원(檀君紀元) 4358년 을사년(乙巳年) 정월이다. 그 놈과 그 년 아니면 그 새끼를 찾아 살얼음 자동차전용도로를 달린다. 잔설 깔린 고속도로를 질러간다. 악천후 날씨도 막지 못하는 귀성길이다. 어느 놈이 나를 끌어당기나, 어느 삼단 머리채 윤기 자르르 검은 년이 가슴 뜨겁게 기다리나. 어느 새끼가 이다지도 못견디게 미운 정 고운 정 앞세워 기다리고 있나. 으허허! 우하하!
아무도 기다리는 짜식이 없다면, 뒷산의 나무들과 선영(先塋)을 기억한다. 움직이지도 않고 말도 없는 그들이 기억의 유선을 타고 젖줄처럼 목을 적실 것이다. 버석거리는 풀 한 포기 길섶을 기억하고 있다면, 비탈길 가뿐 호흡도 가슴을 두드릴 것이다. 꼭 어느 년이 있어야 가나, 그 새끼가 눈부라리고 있어야 가나. 사람이 돌아보지 않는다면 산과 개울과 돌멩이들이 말없이 맞아즐 것이다.
때로는 아무 조건 사유 없이 맞아주는 게 고향이기도 하다. 보기 싫은 놈과 년이 있더라도 앞을 막지 않는 길이 훤히 나 있다. 사람의 눈보다 사물의 눈이 더 부드럽다. 청솔가지 갈참나무 어울려 사는 뒷산처럼 사람은 모여 살아도 숲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무보다 더 외롭고 지랄맞다. 지랄맞은 사람들이 극렬히 찾는 게 설날의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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