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지붕으로 삼고 땅을 침대로 쓰는 그에게 사소한 비바람은 선풍기나 다름없었다. 숲은 이불이었으며 꽃이 있는 풀은 요에 불과했다. 종종 꽃을 바라보며 아름답는 생각을 했지만, 혀로 냄새를 맡아야 하는 운명 앞에서 이빨에 독을 예비하지 않고는 숱한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가 없었다.
그를 유혹하는 건 새 알과 들쥐같은 힘 없고 빽 없는 무지렁이 순수(純粹)들이었다. 그 자신은 교활하고 지능적이었으므로 일상생활을 영위하려면 끝없이 순수물을 섭취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순수도 지나치게 섭취하면 독이 되는 것일까. 매끈한 피부와 유연해진 몸매로 빛이 나던 그는 더 이상 배로 땅을 기어다니는 배지기 인생을 달가와하지 않았다.
푸른 하늘을 나는 청룡(靑龍)을 꿈꾸기 시작했다.
몸을 푸르게 만들기 위해 숲과 숲 속에 있는 물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꽃을 씹어 먹으면 눈이 밝아지고 작은 동물들을 먹으면 몸에 윤기가 흘러 넘쳤다. 무엇을 어떻게 더 먹으면 몸이 중력을 거스르며 가벼워지는지 어두운 숲에서 만난 영험한 무녀(巫女)로부터 남청색의 귀기(鬼氣)와 어둠의 주문을 전해들었다.
몸이 점점 파랗게 물들어 갔다. 가슴마저 인디고 색으로 물들어갈 즈음 곧장 용이 되기에는 피치못할 충격에 맞닥뜨림으로 하늘을 지붕으로 삼고 땅을 침대로 쓰는 그에게 사소한 비바람은 선풍기나 다름없었다. 숲은 비늘이 되었으며 꽃이 있는 풀은 혓바닥에 불과했다. 종종 꽃을 바라보며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지만, 혀로 냄새를 맡아야 하는 운명 앞에서 이빨에 독을 예비하지 않고는 숱한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가 없었다. 곧장 용이 되기에는 이무기부터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무녀의 충고를 충실히 받아들였다. 용의 서기가 어린 땅을 골라 제단으로 삼고, 하늘을 우러러 담대한 포부를 외쳐야 한다는 덕목도 추가되었다.
파란색이 더 짙어져 어둠의 색으로 변할 즈음 어느 정도 공중부양의 정신적 경지에 도달한 그는 구룡폭포의 높이와 물줄기를 따라 도약을 시도했다. 폭포의 머리 위에 등용문의 무지개가 서려 있었다. 그는 몸을 날렸고 무지개는 코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용이 될 것이다!' 그는 외쳤다.
그 날의 날씨가 문제였다.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한 날이었다. 그런데 그의 부양을 받쳐줄 어둠이 너무나 약했다. 그늘이 강해야 빛을 이기고 떠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조금만 잿빛 구름이 덮혀 있었더라면........ 폭포 아래로 곤두박질하며 그는 서둘렀던 일정을 후회했다. 날씨가 도와주지 않을 걸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의 용꿈은 푸른 하늘 속으로 멀어져 갔다.
을사년(乙巳年) 모월 모일에 그는 단군신화를 도입하지 못한 숲에서 애꿎은 풀과 꽃만 타박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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