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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의 글

다섯째 작은아버지에 대한 내 유년의 기억

사촌들 2024. 11. 17. 10:46

 작은 아버지  6형제들 중에서 다섯 째인 南자 弼자 작은아비지(허리원:백*, 연*, 극*, 지*-*준 사촌의 부친)에 대한 기억은 특별한 데가 있다. 큰댁 두 번째 조카인 내(成衍)게 학문적(學問的), 문학적(文學的) 영향을 크게 끼친 분이기 때문이다. 영어와 수학을 당시 사방터 본가에서 함께 살던 삼촌으로부터 알밤 꿀밤 맞아가며 배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특한 기질을 지닌 분이라 매사에 분명했고, 지적(知的)인 사고(思考)가 몸에 배어 있었다. 시간을 묻는 영문 "What time have you?" 가 선명하게 생각나고, 삼촌의 영어책 뒤에 적은 '아! 인생이란 무엇인가'란 한글 문장이 기억에 또렷이 담겨 있다. 꾸지람 받아가며 영어 수학을 배웠지만, 그후 영어를 좋아하게 되었고, 한글 문장은 시(詩)를 쓰게 된 근원(根源) 되었다.

 삼촌은 마을 사람들 한글교육 선생님으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아마도 제2차 교육과정기(1963~74년) 어느 해 즈음으로 생각된다. 교육현장을 보지는못했지만, 교육이 있는 날은 농삿일을 멈추고 아침부터 말끔히 세수를 하며  몸가짐을 갖추던 모습이 생각난다. 교재를 손수 만들며 소임을 다하는 모습이 충분히 교사 역할을 해낼 수 있는 분이었다.

 삼촌은 손맵씨도 여느 형제 못지 않게 장인급(匠人及))이어서 만드는 물건마다 그 효과가 남달랐다. 앞산 뒷산 산짐슬이 다니는 길목에 올무를 설치하면, 틀림없이 산토끼가 걸려 있어, 열 명이 넘는 가족의 몸보신을 시켜 주곤 했다. 물고기를 잡을 때는 족대와 쇠메 말고도 6.25 잔해, 혹은 군사격장에서 얻은  M1 실탄으로 어렵용(漁獵用) 폭죽을 만들었다. 즉 실탄의 탄환을 뽑아내고 화약을 그냥 둔 채 도화선을 짧게 끼워 펜치로 밀봉했다. 마을 앞 개울에 가서 물결이 잔잔한 곳이나 특히 물방뚱지에서 된장 밑밥을 뿌려 고기 떼를 모은 뒤. 도화선에 담뱃불로 인화하여 던지면 잠시 후 '풍!'하는 폭발음과 함께 물꽃이 피어오르고 이내 송사리 피라미 등이 하얗게 배를 뒤집고 떠올랐다. 그냥 건져내면 매운탕 끓여 먹는 즐거운 날을 만들곤 했던 것이다. 빨랫비누 모양의 TNT 조각에 도화선을 박아 사용하기도 했는데 그런 날은 대단한 폭발음과 함께 물기둥이 10여 미터 솓아올라 장관을 이루었다. 

 

 

 삼촌이 만든 새창애(참새를 잡을 쓰는 창애)는 가히 특산품이었다. 싸릿가지로 활을 만들고 노끈으로 만든 시위를 거치대에 꽁꽁매어 시건장치 부분에 조이삭을 매단 다음 눈이 두텁게 쌓인 논두렁에 꽂아 놓기만 하면, 조이삭을 쪼다가 노끈 시위에 목이 눌린 참새가 여지없이 늘어났다. 겨울 농한기라 사랑채 웃방에서 가마니 짜기를 할 때였는데, 가마니짜기 틀에 줄줄이 끼워 놓았다가 저녁나절 쇠죽끓이는 가마솥 아궁이에서 털을 뽑고 싸릿가지에 꿴 참새를 구워, 일찌기 맛보지 못한 '참새구이' 즐기게도 한 장본인이시다. 

 

 

 결혼 직후 본가 건넌방에서 신혼살이를 했는데, 마침 농한기여서 가족 식사때를 제외하고는 종일 신혼방에서 나오지 않거나 심지어 마실도 나가지 않아, 어쩌다 동네 동년배 혹은 손윗 사람들을 만나면, 신혼에 얼굴살이 쪽 빠졌다는 놀림을 받기도 했다.~^^* (이 목격담은 진짜 팩트임) 

  작은아버지가 되어 허리원 현재 집터 부근으로 분가 한뒤, 요꼴 논마지기의 벼농사도 해마다 풍년으로 일구었고, 부지런하여 밭작물도 풍년을 놓친 적이 없는 것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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