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종자 또는 어떤 이유로 존경의 대상이 되는 인물에 관하여?
삼라만상 우주의 피조물은 근본적 대칭의 산물이다.
인체도 반은 대칭이다. 두개의 눈 두개의 귀 코구멍 하나의 입이어도 반은 대칭이다.
그렇치만 대칭은 맞지만 반드시 절반이 완벽한 데칼코마니는 아니다.
사회적 갈등의 요소이기도 한 좌파 우파의 힘의 논리도 완벽한 대칭이 불가능하다.
어느 한 쪽이 우세하거나 기울거나 힘의 중력이 시기와 시대에 따라 시소처럼 좌우
왔다 갔다 한다. 정치판이 그렇고 때로는 독립적인 사고를 하는 한 인간의 생각도
좌우로 왔다 갔다 한다.
중간 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사물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위치가 되지만,
사람은 상황 논리나 추종하는 방향에 따라 기울기도 하고 보편적인 판단의 결핍이
발생할 수 있다.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인간의 속성을 철저하게 비켜가기 쉽지
않다는 의미다. 그 것은 추종자 또는 이너서클 그들만의 리그의 강력한 힘의
논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상황의 힘은 의지를 무력화하고 눈과 귀를
멀게하며 불랙홀처럼 한 곳으로 향하는 집단적 광기를 유발한다. 그리고 밀려오는
거대한 목표의 쓰나미에 함몰되어 어어 하는 엉거주춤 휩쓸려 떠내려 가는 것이다.
판단 결여의 결과는 고스란히 본인의 몫으로 남고 뒤늦은 깨달음에 후회를 하게
된다.
선전 선동을 누가 하는가? 그리고 그는 누구인가?
대중의 눈을 멀게 하고 민심을 조장하며 조작을 일삼는 그들은 누구인가?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선동가의 현란한 언어에 따르고 추종하며 선전
세력에 가담하는 몽매무지한 우매한 사람들이 정치적 흥망성쇄에 단초를
제공하는 부역자가 된다.
선동가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이 올바른 행위라고 강조하며 그렇게 믿는다.
따르는 추종자들은 밑도 끝도 없는 오로지 해바라기들일 뿐이다. 피리부는
사나이가 광활한 옥토의 대지로 끌고 갈 것인지 아님 비관적인 절망의 끝인
죽음의 바다로 갈 것인지 한 시대의 주어진 상황과 판단은 매우 중요한 분기점의
주역이며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계기가 된다. 과거엔 언론이 그들을
대변하고 제한적인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인터넷 유튜브 각종 매체에 선전
선동가들이 집단적인 포화를 쏟아낸다. 그리고 편파적이며 진영의 논리에 빠져
옳고 그름은 없고 선동 선전에 나팔수 역할을 하고 있다. 분리수거가 불가능한
무수한 쓰레기들이 난무하는 난지도에서 삶의 보람을 찾고 밑거름이 되는
보석을 찾는 일이 쉽지 않다.
제어장치가 없는 범람하는 좌우의 집단적인 광기에 빠져 대척점의 논리적 갈등이
고조되고 나는 없고 파벌의 목적만 난무하고 몰리고 끌려가고 사회적 집단 개인적
사고의 영역에 온갖 오물들이 쓰나미처럼 밀려들고 있는 형국이다. 흑막에 가려진
본질을 깨닫지 못하면 오로지 대가를 몸소 치러야 하는 때늦은 후회의 판단은
스스로의 몫이며 명분없는 폐기물만 남는 것이리 .......
겨울나그네60 2022. 5. 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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