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을 짓는 일은 집 한 채를 짓는 일과 같다. 어불성설(語不成說)일까? 터를 다지고 기둥을 세우고 서까래를 얹은 다음 지붕을 잇고 벽을 바르고....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따뜻한 방 안에 식구들이 모여 앉을 때까지 기나긴 시간이 땀과 노력 속에 녹아든다.(이 건 전통 가옥을 지을 때 대강 순서이고), 지금이라면 터를 닦고 골조를 세우고 콘크리트 벽을 액체 시멘트로 타설한다음 슬레이트 혹은 슬라브식 지붕을 잇고, 창을 낸 다음 설치한 보일러를 돌려 따스해진 거실에 식구들이 모여앉을 때까지 시간과 돈이 녹아들 것이다. 책 한 권을 짓는 일은 양질의 한지를 준비하고, 먹을 진하게 한참을 갈아 가늘고 힘찬 모필에 묻혀 생각과 마음을 적어내린다. 수십 장을 몇 날 며칠 한자와 한글로 지면을 채운 다음 기름 먹인 겉장을 며칠 걸려 준비를 하고, 꼼꼼히 송곳으로 구멍을 내서 노끈으로 묶어 한 권을 낸다. 춘향전, 홍길동전이 어디 한권 뿐이었을까.(이건 옛 문헌 출간의 대강 순서이고) 지금은 출판사에 원고를 맡기면 무더기로 양산한 다음 유명세에 따라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 어쩌고 상품의 가치로 회자된다.(이건 근대식 출판의 대강 순서이고), 현재는 내가 쓴 글을 출판 시스템에 맞추어 손수 편집, 교열 교정을 한 원고를 pdf파일로 변환하여 온라인 출판사에 보내면, 저자가 원하는 권 수로 인쇄를 해서 보내준다. 인터넷 서점 입점까지 일사천리로 대행한다. 저자가 기나긴 시간 동안 온 마음과 정신으로 써내려간 글과 편집으로 책 한 권을 짓는 일이 어찌 집 한 채의 꿈과 즐거움 만큼이지 않으랴! 엇비슷 기쁘지 않으랴! 우리 사촌들 중에서 이미 책 한 채를 지은 이가 있고, 또 한 사람의 사촌이 책을 낼 채비를 하고 있다. 기대와 응원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