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사람은 평범한 조건에 해당되지 않은 삶이란?
아무리 당당해야할 의무와 인권을 강조해도 본인이 의식적 불편함을 인식하고 있다면 스스로 안도와 편안함에 놓아두고 삶의 영역을 조성하고 정신적 갈구를 성찰하는 본인의 의지가 중요하다. 타인의 삶의 관하여 '왜 그렇게 살아' 당당하게 세상에 나와 실체를 보여주며 보란듯이 활보하라며 평범한 사람들은 그렇게 메시지를 강요한다.
인간은 어떤 조건이든 모두 소중하고 존중받아야할 마땅한 권리의 존재라고 강조한다. 즉 인권이다. 이를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본인의 행위 또는 행동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자괴감 부끄러움 창피함을 느낀다면 그건 권리를 떠나 스스로 마음이 불편하고 자신의 모습을 발가벗기고 싶지 않다는 방어적 의식이자 굳이 불편한 실체를 세상에 드러낼 어떤 이유가 없다는 개인적인 판단이다.
설사 피해의식 내지는 옹졸한 내면이라고 해도 그러한 굳이 드러내어서 오히려 시선으로부터 핍박을 받는 상황을 만들어 기분 망치고 심리적 상처를 입는 결과를 초래할 이유가 더더욱 없다는 뜻이다. 사실 사람들은 타인의 장애와 결핍 외형적 모습에 관하여 대부분 관심이 없다. 현대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런 현상이 두드러지기도 하다는 게 개인적인 판단이다. 그 뜻에 배치되는 것은 안타까움 애석함 동정심도 가져야할 이유도 없음이며 어쩌면 자신의 삶을 꾸려가고 관리하는 것조차 버겁다는 현실이 더 압도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한 현상은 오히려 소수의 관심의 대상이 그져 자신보다 조금 부족함 또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정도에 관심 밖의 철저한 남의 일에 불과하다는 간결한 의식의 결과이지 않을까 싶다. 사람은 축소된 우주이며 수천가지가 집합된 천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결점이 없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드러나는 외형적 신체적 조건과 정신적 심리적 결함 내지는 다양한 문제를 가진 소우주라는 것이다. 삶이란? 그뿐만 아니라 살아가면서 어떤 행위나 행동이 불법에 저촉되어 전과자가 되고 지울 수 없는 불편한 흑역사를 남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어떤 결핍에 관하여 당당하게 보여주고 실체를 드러내어 얼굴 붉히는 과정을 굳이 실행한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스스로 마음가는 데로 살아가는 심리적 안정을 요하며 자랑거리는 숨길 필요는 없지만 사회적 편견에 저촉되는 결핍은 굳이 드러낼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어떤 일이든 부끄러움 창피함이 동반되는 행위를 몸소 실천할 필요가 없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대부분 타인의 결점에 관하여 관심이 없지만 스스로 자괴감 또는 불편함을 느낀다면 보여줄 필요가 없으며 차라리 숨기고 자신의 평안을 가지는 게 낫다는 의미다. 왜 굳이 화끈거리는 얼굴을 당당하게 보여주며 외치며 이중적 표현을 강조할 이유가 있냐는 물음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인의 마음이 동하지 않은 행위를 삼가하며 불안감을 굳이 조성하며 상처를 내지 말라는 충고의 언어다. 보여주지 않아야 할 것들,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것들, 보여줄 필요가 없는 것들, 보여줘서는 안 되는 것들, 알 권리와 무관한 것들은 굳이 드러내어 난도질 당할 어리석음을 자초하지 말라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결점을 안주삼아 신변잡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조그만 사건 하나만으로도 침소봉대하여 부풀리는 풍선 효과를 절대 사절하지 못한다. 애석하게도 타인의 불행을 보고 위안을 삼는 자존감 낮은 것이 또한 인간의 사악한 본질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원래 본성이 우위에 있는 타인을 시기하며 너그럽지 못하다. 동등한 위치에서 수평적 관계를 무의식 속에서 선호하며 유지되기를 은연중 끌리는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자리에서든 남이 알아주는 것은 굳이 탓할 이유가 없지만 잘난 자랑은 절대 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자랑은 정 맞을 각오하고 타인들에게 전하는 본인의 오만이다. 돈 자랑, 자식자랑 여타 그 어떤 종류의 타인의 기분을 망치는 자랑거리는 절대 드러내거나 표현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희연사촌

이미지 발췌 ..... 1980년대 어느 날 초기 글쓰기 노트에 이 그림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