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노벨 문학상
노벨 문학상은 먼 나라 이야기이며 그들만의 잔치라고 무의식속에 있었던 단어다.
근데 우리나라 작가가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문학이라는 주제에 귀를 쫑긋 세우게 하는 나름 오래동안 텍스트 작업에 몰두해온 터라 무의식 속에서도 귀를 여는 가벼운 반응이 있을법 하다.
스웨덴 한림원은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스웨덴 왕립 아카데미라고 한다. 프랑스 학사원을 본떠 설립한 한림원은 노벨 문학상 선정위원회를 겸하고 있다고 한다.
근본적으로 노벨상은 노벨이 최초로 발견 개발한 화약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 들였다. 폭발로 인한 제조 공장이 박살나고 부침이 있었지만 인류에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준 혁명적인 화학물질이었다. 또한 인류의 욕망에 의한 전쟁의 무기인 폭탄으로 개발되고 지구를 초토화 하는 메가톤 원자탄이 등장했다. 자신이 개발한 다이너마이트가 다수의 인명을 살상하는 무기로 변질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현장을 목도하면서 한탄했다고 한다. 그는 그후 자신이 화약으로 벌어들인 돈을 인류의 평화를 기여한 사람들에게 주라는 유언을 남겼고 유산을 기금으로 하여 1901년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에서 노벨상을 만들었다. 그게 오늘의 스웨덴 한림원에서 매년 물리학,평화, 화학, 생리, 의학, 경제학, 문학 등등 여러 분야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주는 권위있는 상이 되었다.
우리나라 문학 작가<한강>이 올해 노벨 문학상 수여자로 선정 되었다. 사실 이미 잘 알려진 작가라고 하는데 소시민으로 살아온 나는 잘 모른다. 영국 연방 국가에서 소설 부문의 뛰어난 작품을 선정하여 주는 문학상이 있단다. 1969년 영국 부커사가 제정한 부커상이다. 한강의 소설이 영어로 번역되어 이곳에서 먼저 수상 했고 이미 유럽에서 알려진 작가이며 문학 부분에 반열에 이른 성공적인 작가라는 것을 후일 매스컴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부커상은(Booker Prize) 영국 유통업체 부커가 제정한 문학상이라고 한다. 그야말 일명 책을 판매하는 영국의 유통업체에서 제정한 유럽 문학 작품에게 주는 상이다. 노벨 문학상, 프랑스 콩쿠르 문학상과 세계 3대 문학상이라고 불리는 부커상을 받은 <한강>은 올해 노벨 문학상까지 받은 2관왕 주인공이 되었다.
최초로 문학상을 받은 우리나라 소설가 한강의 사진이 매일 인터넷 헤드라인 면에 빠짐없이 등장했다. 영광스런 일이다. 본인은 물론 우리나라에서 호흡하고 존재하는 자국민의 자부심도 있을 법하다. 반갑고 기쁘고 축하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아킬레스건 인 좌우 이념이 여기에서도 초연하게 비켜갈 수 없는 갈등의 불씨가 일어나고 있다. 작가의 소설 모티브가 되는 5.18 광주 민주항쟁 사건과 제주 4.3 사건이 다뤄졌기 때문이다. 공권력의 입장에서 판단하는 우파의 이념적 사고는 정당하고 합법적인 법 집행이라고 주장하고 좌파라고 일컫는 죽임을 당한 피해자의 가족 또는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민주화를 위한 궐기와 공권력의 부당함을 항거한 입장인 것이다.
상반된 사고와 오랜 갈등의 역사를 가진 영호남의 이질적인 사고는 아무리 세계적인 그 어떤 권위있는 상을 받은 자국민이어도 받아들일 수 없는 배타적인 습성이 작용하는가 보다. 일부 보수단체가 스웨덴 대사관 앞에서 시위하는 현장이 보도 되기도 했다. 좌파적 사고를 떠나 개인적으로 참으로 못났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념적 갈등의 대척점에 놓이지 않은 3자 입장이어서 그런가 스스로 의심이 들 정도다.
역사적으로 민감한 공권력에 항거하며 민초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고 해도 소설은 소설이다. 그리고 한강의 소설은 산문 형식의 시적인 은유가 바탕에 깔려 있다. 이유야 어떻든 무자비한 총칼에 사람들이 죽고 살아있는 자의 고통을 시로 소설로 승화한 것이다. 여기에 꼭 고질적인 우파 좌파의 이념이 끼어들어 젯상에 재를 뿌리는 못난 행동이 과연 바람직한 행위인가 묻고 싶다. 권력 정치 집단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 갇혀 한발자국도 못 내딛는 못난 그들만의 논리의 그룹이 마치 정의인양 떠들고 피켓을 들고 거리를 나서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기를 스스로 지혜롭고 현명한 판단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명료해지는 이유다.
한강이 그동안 펴낸 책들이 서점마다 완판이 되어 인쇄소에서 밤새워 찍어 낸다고 한다. 네임 밸류가 작동하는 것이다. 평소 책을 가까이 하지 않은 사람들의 생각까지 깨우고 서점으로 달려가게 충동을 부채질 하는 것이다. 노벨상 받은 책이 당근에도 올라와 있었고 순식간에 다른 사람에게 양도되었다. 서점에서 쉽게 살 수 없는 책이니 그럴만 하다. 많은 사람들이 찾고 인류에게 이로운 상황이라면 바람직한 일이다. 나 역시 텍스트를 가까이 하는 사람이면서 일년에 한 권 조차 책을 사지 않는 책방과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보잘것 없는 골방 문학을 자처하며 쓴 글들을 모아 올 초에 수필집을 출판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남의 책을 한 권 사본 일이 언제인가 기억에 없으면서도 책을 낸다는 것이 참으로 기가찰 노릇이다.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여에 진심으로 축하하고 한편 부럽기도 하다. 나에겐 상상도 할 수 없는 높은 벽을 넘은 한강의 위대한 저력과 오래동안 집필을 하고 다수의 책을 펴낸 작가의 노고를 깊이 칭송하며 시대의 승리자가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바다. 당장은 아니어도 열광하며 책방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질 쯤 마치 더 이상 찾지 않은 잉여 책으로 휑한 바람이 부는 들녘에 머물 때 겨울 잠바데기 속안에 품고 온기를 넣게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다. 한 때 뜨겁던 과거를 떨쳐내며 소외감 느낄 때 어루만져주는 동정의 행위가 위선일까? 오만일까? 냉소적이며 비겁한 행위일까? 그건 내가 선택하는 독자의 권리 이기도 하다. 노벨상 수상의 유명한 한강이 쓴 책이든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해도 읽고 느끼고 깨닫고 하는 감성은 독자의 몫이다. 그리고 감동은 모두가 공여되고 받아들여야 하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아무리 세계적 문학이라고 해도 개인적으로 느낌이나 감동이 없다면 그냥 개인에겐 하얀색 바탕에 쓰여진 검은 텍스트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날 정독의 기회가 주어지면 흘깃 스쳐가듯 보던 신문지의 수많은 활자를 보는 것 보단 돋보기를 코끝에 걸치고 훨씬 관심을 표현하고 집중도를 높이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이 노벨 문학상을 받은 유명한 책이다 라고 의식하며 책을 보게 되면 다르게 인지하고 인식하게 될 공산이 있다는 의미다. 마치 평범한 사람과 유명한 사람과 상면하고 대화든 악수를 하든 느낌이 다르듯이 그런 의미의 권위적인 수용 태도와 의식이다. 그래서 객관적인 판단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 어떤 실체를 판단하는데 정보와 물체를 볼 수 없는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여 진솔한 결정을 도출해내는 방법이 등장한 것이다.
월단평은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인물이어서 그런지 한강의 모습은 실제 본적이 없지만 사진으로 보면서 전형적인 글을 쓰는 작가의 모습처럼 보여졌다. 마치 잠자리에서 부스스 일어난 덜 깬 반쯤 감긴 눈매에 시골뜨기 같은 풋내기처럼 느끼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언어도 조근조근 기어 들어가는 허스키한 목소리에 노래도 불렀다고 하여 유투브에서 청취했는데 가수 소질은 전혀 아니었고 그의 생각이 담긴 작곡과 작사에 의미를 두는 것과 독특한 개인의 행위로 판단했다.
문학상을 받은 한강의 대표적인 소설 '채식주의자' 그리고 민감한 화두로 등장한 광주 5.18을 다룬 ' 소년이 온다' 제주 4.3 사건의 비극을 담은 '작별하지 않는다' 근대사의 비극적인 사건을 독특한 산문 소설로 형상화 했다. 국내 다수의 문학상을 받은 한강은 탄탄한 수상 이력의 유명 작가 반열에 오른 사람이다. 다방면에 알려진 한국의 정서가 스며든 k문화의 세계적인 인지도 영향도 한몫 했을 것이라는 조심스런 추론도 해 본다. 세계 지도에서 한 점에 지나지 않은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그것도 잘린 반쪽 한반도 북쪽엔 수십년 폐쇄된 집단이 우물안에 갇혀 있고 남쪽은 음악과 문학이 세계인을 사로잡는 이질적인 동족이 상존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현대사를 보고 있는 셈이다.
'사촌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단기 4359년 정월 (0) | 2026.02.14 |
|---|---|
| 주식투자 이야기 (1) | 2026.01.01 |
| 우리 사촌님들 문앞에 봄(春) (0) | 2025.03.11 |
| 6형제의 아버지와 어머니들 (0) | 2025.03.03 |
| 둘째 작은아버지에 대한 나의 기억 (0) | 2025.02.13 |